결혼한 지 1년이 지난 부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
부부싸움의 가장 큰 원인이 뭐냐는질문에 응답자의 40% 이상
이 성격과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이라고 대답했다.
1. 결혼은 다른 공간의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
대학시절 만나 지금의 남편과 5년의 연애 끝에
결혼한 선희씨.
현재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결혼 후 1년에 대한 질문에
그저 '거의 만날 울다시피 했지'라며 한숨 섞인 대답을 한다.
당시 스물일곱이었던 그녀와 두살 연상이었던 남편.
둘 다 청춘을 좀더 즐기다 결혼을 해도 충분한 나이였다.
그저 정착하고 싶었단다.
오랜 세월을 함께 해왔고 서로를 너무나 잘 안다고 믿었기에
두 번 망설이지 않고 결혼을 결정했다.
아이는 조금 나중에 낳더라도 신혼을 즐기며 재미있게 살자는
계획으로 결혼식을 올렸다.
그리고 떠난 허니문. 그곳에서 그만 허니문 베이비,
지금의 첫째가 생기고 말았다.
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 온 이 작은 이방인에 엄마 아빠가 당
황한 것도 사실이다.
그래도 이왕 생긴 아기를 어떡하겠나 싶어 서로 편하게 생각
하고 출산 준비에 들어갔다.
그리고 일 년. 드디어 사내아이가 태어났고
현실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.
다른 부부들은 아이가 생기면 아빠가 더 좋아하며
육아에 전념한다고 하는데 남편은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
참으로 냉담했다.
맞벌이 부부인지라 각자의 생활이 바빴고 그 와중에
아이 문제와 가사 문제로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.
문제의 발단은 늘 가사분담과 육아문제였지만 사실 본질은
그게 아니었다.
좀더 신혼을 즐기다 아이를 갖고 싶었던 남편 입장에서는
가끔 아기가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.
은연중에 나오는 말투나 아직 젊음을 채 즐기기도 못해
결혼을 했다는 말을 할 때면 선희 씨는'이 인간이 과연 내가
전에 알던 그 인간이 맞나?'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.
가사분담 문제에 있어서도 다투는 날이 잦아졌다.
연애시절과 180도 틀려져 결혼 후에는 정말 가사일에는
손 하나 까딱 안하는 것이었다.
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딸셋 중 맏이라고 집안일 한번
제대로 안하고자란 선희 씨,
시골의 보수적인 집안의 할머니 밑에서 손 하나 까딱
안하고 자란 남편.
너무나 닮았지만 다른사이. 선희씨와 남편의 모습이었다.
육아와 가사, 직장생활에 지친 선희씨는 급기야 우울증
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.
그렇게 남편과의 치열한 한해를 보내고 진정을 찾기까지
근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.
'그동안 아이가 커가는 거 보는데정신이 없었어요.
'혹 같은 존재로 느껴지던 아들이 한살한살 먹을수록 의지가
되고 집안에 웃음을 가져다주더란다.
'아이가 커 갈수록 남편도 저도 좋은 엄마아빠가 돼야지 하는
욕심이 생기더라고요.
별 수 있나요.
20년이 넘게 다른 곳에서 살다 만난 사인데. 인정해야지요.
서로 다르다는 것을.
이제는 서로 상처 주는 말이나 듣기 싫어하는 말은 제가
웬만하면 안 하려고 해요. 파악했지요.
2. 결혼은 교집합을 일부만 가진 집합의 만남
한 여자와 남자가 만나 서로를 알아감과 동시에
나를 알아가는 것.
어쩌면 결혼은 자신이 투영된 공간을 살아가는 것인지도
모르겠다.
올해로 서른네 살인 희진씨.
제작년에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과 일 년간의 교제 끝에
드디어 작년에 결혼을 하고 최근 결혼 1주년을 맞이했다.
1년을 살아본 느낌이 어떠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런
심오한 말을 한마디 던진다.
'결혼을 집합으로 비교하자면 교집합을 일부 가지고 있는
두 집합의 만남이라고 생각해요.'
'왜 있잖아, 우리 중학교 들어가면 수학 시간에 제일 처음
보는 그림. 동그라미 두 개 살짝 겹쳐 놓은 그림' 그녀
역시 앞서 소개했던 선희씨와 마찬가지로 결혼 후
변하는 남편의 모습에 적잖게 당황한 것도 사실이다.
아버지, 오빠 모두 의사인 명문 집안의 막내딸로 어릴 때부터
언니 오빠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그녀와 홀어머니
슬하에서 누나와 어렵게 자라온 남편의 만남은 제 3자 입장
에서 봤을 때 썩 어울리는 한쌍은 아니었다.
결혼 전 남편을 인사시키기 위해 집에 데려갔을 때 자상하고
착한 남편의 모습에 친정 식구 모두가 반겼다고한다.
그때만 해도 살면서 느끼게 될 이질감에 대해서는 절대 생각
못했다.
'연애할 때는 오빠가 잘 맞춰주니깐 몰랐지.
결혼하니깐 무뚝뚝하고 우리 친정처럼 집에 식구 많은 거
싫어하고 그러더라고요.'
결혼 후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희진씨는 자신과 너무
다른 남편과 시어머니의 모습에 당황할 때가 최근 들어 부쩍
늘었다고 한다.
정희씨도 남편처럼 직장 생활을 함에도 불구하고 남편과
가사를 분담하면 시어머니가 언짢아한다거나 일 땜에
똑같이 야근을 해도 정희 씨의 일에 대해선 왜 야근을
하는지 이해 못하는시어머니를 볼 때마다 서운한 건
어쩔 수가 없다고.
그런데 인터뷰 도중 그녀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를 알려줬다.
'결혼 전까지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몰랐어.
그저 남들한테 피해 안주고 자기 할 일하는 평범한 사람 정도
라고 생각했지' 그러던 며칠 전 남편이 이러더란다.
'네가 세상에 주는 너그러움, 나랑 우리 엄마한테 반만 줘도
우리 절대 안 싸울걸.'
남편 말에 기가 차기도 하고 '내가 그렇게 못된 아내,
며느리였나'라는 반성도 들었다고 한다.
'싸울 때마다 나는 항상 옳다'라고 생각했던 그녀.
사랑할 때는 꿈을 꾸지만 결혼하면 잠을 깬다는 말이 있다.
그녀는 이제 막 잠을 깨는 과정에 있고, 그동안 남편 아닌
타인에게 줬던 너그러움의 반을 남편과 시어머니에게
나눠주면 된다.
뭐, 결혼 생활이라는 게 말처럼 쉽겠냐만 어찌하리.
반쯤 눈을 감지 않으면 내 눈이 너무 아픈 것을.